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Timeless Art — 《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화 10선》 5편: 술라웨시 Leang Karampuang 동굴벽화(인도네시아 5만년 전 이야기)

📑 목차

    5편. 인류 최초의 이야기 벽화 — 술라웨시, Leang Karampuang으로 들어서다

     여정의 문: 술라웨시 남부 카르스트 지형 속으로

    인도네시아 남부, Maros-Pangkep karst 지역으로 떠나봅니다. 이곳은 석회암 지형이 오랜 세월 비바람과 물의 흐름으로 깎이고

    부식되어 만들어진 수백 개의 석회동굴들이 숲과 논밭 사이에 숨겨져 있는 땅입니다.

    현지에서는 이 동굴군을 합쳐 Leang Karampuang cave complex 라고 부릅니다. 
    대부분의 입구는 논밭보다 20~30 미터 위, 절벽 같은 석회암 옆에 자리하고 있으며, 좁은 통로와 가파른 계단, 때로는 손전등만 의지해야 할 정도로 어두운 구간을 지나야 합니다. 여행자라도 가이드와 함께,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‘숨은 공간’입니다. 이곳이 바로, 21세기 과학자들과 탐험가들이 “인류 최초의 그림”을 찾아 다녀간 장소입니다.

     

     1. 벽화를 만나다: 손바닥 흔적과 동물, 그리고 이야기

     

     손바닥 흔적 — ‘나는 여기에 있었다’의 첫 흔적

    1950년대, 네덜란드 탐험가들에 의해 이 동굴들이 처음 보고되었지만, 당시엔 단순한 자연 동굴로 여겨졌습니다. 그림이 있을 거라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습니다.

    그러나 2014년,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네시아 고고학자들이 석회암 벽에 남은 손 스텐실과 동물 그림에 대해 정밀 연대 측정을 시도했습니다.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— 최소 39,900년 전으로 측정되었습니다.

    손바닥을 벽에 대고, 물 또는 침에 섞은 붉은 오커(hematite) 안료를 뿜거나 불어 그렸을 것입니다. 얼마나 절묘한 순간이었을까요. 손을 내민 누군가, 옆에 전등 대신 횃불을 들고, 벽에 살포된 붉은 먼지 사이로 손의 윤곽이 떠오르는 순간, 그것이 4만 년 전의 누군가에게는 “여기 있었음”의 선언이었을지도 모릅니다.

     동물과 형상 — 사냥감과 삶의 기억

    손바닥 옆에는 붉은 오커로 그린 동물의 실루엣이 있었습니다. 특히 Sulawesi warty pig (술라웨시 고유종 멧돼지)와 바비루사(babirusa) 같은 토착 동물들이 여러 점 묘사되어 있습니다.

    이 동물 그림들은 단순한 스케치가 아닙니다. 세심한 윤곽과 붉은 색채의 고집은, 당시 화가가 알고 있는 생명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, 그것을 오래 남기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줍니다. 불빛 아래, 벽 위 붉은 형체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보였을 것입니다.

     

    Leang Karampuang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 중, 붉은 안료(오커, red ochre)로 그려진 야생 돼지 그림동굴 벽에 선명히 남은 ‘손 자국(stencil hand-print)’이 있는 동굴 벽화 이미지울창한 나무 숲에 둘러싸인 Leang Leang cave complex
    Leang Leang cave complex  동굴 내부 벽화

    📎 Dreamlike Pig-Hunting Scene — World’s Oldest Figurative Art (Science.org) 바로가기

     

     

    2. 과학이 밝힌 연대 — 예술의 기원을 다시 쓰다

     

   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“동굴벽화 → 유럽 구석기 미술”이라는 통념이 지배적이었습니다. 하지만 술라웨시 벽화의 연대 분석은 이 통념에 균열을 냈습니다. 2014년 연구에서 손 스텐실 하나가 약 39,900년 전 것으로 측정되면서, 비로소 인도네시아 동굴미술이 유럽의 벽화와 함께 또는 그보다 앞선 시기에 존재했다는 증거가 나왔습니다. 

    그리고 2024년, 새로운 과학적 방법인 레이저-얼베이션 U‑시리즈(LA‑U‑series) 연대측정이 도입되었습니다. 이 방식은 벽화 위에 자연적으로 쌓인 칼슘탄산염(calcite) 층을 아주 미세하게 분석해, 그 아래에 있는 그림이 최소 언제 그려졌는지 판정합니다. 이 기술을 통해, Leang Bulu’ Sipong 4 의 사냥 장면 벽화는 적어도 50,200년 전, 그리고 Leang Karampuang의 인물 + 돼지 그림은 최소 51,200년 이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. 이는 현재까지 ‘가장 오래된 신뢰할 만한 동굴 벽화’라는 기록을 세운 것입니다. 

    이 뜻은 무엇일까요? 우리가 이전까지 “구석기 유럽이 인류 예술의 중심이었다”고 믿었던 관점이 뒤집혔다는 의미입니다. 예술적 표현, 스토리텔링, 상징 — 이 모든 것이 이미 동남아시아에서도, 그리고 우리가 알던 시기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입니다, 

     

     

     3. Leang Karampuang(르앙 카람푸앙)ㅡ 이야기와 상징의 탄생지

     

    그림 속 ‘이야기’ — 단일 이미지가 아닌 장면으로

    특히 Leang Karampuang의 벽화는 손자국이나 동물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. 세 명의 인물형(사람 같기도 하고, 상징적인 존재 같기도 한)과 커다란 돼지 한 마리가 상호작용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. 연구자들은 이 배열과 동작의 표현을 보고 “스토리(이야기)를 전달하려는 의도”가 분명하다고 말합니다. 즉, 이것은 그림이 아니라 시각적 내러티브입니다.

    이 발견은 인류가 그림을 통해 단순한 표현을 넘어서, 사건·관계·의미를 전달하려는 능력을 아주 초창기부터 가졌다는 증거입니다. 형상 묘사가 아니라 ‘이야기를 남기는 행위입니다. 인류 최초의 그림책, 오래된 만화와도 같은 벽화라 할 수 있습니다.

     지형과 장소 — 카르스트가 준 특별한 캔버스

    술라웨시의 마로스‑빵껩 카르스트 지대는 동굴이 빽빽한 석회암 지형입니다. 덕분에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든 높은 굴, 좁고 어두운 동굴 천장, 습하고 어두운 환경이 많았습니다. 그런데 바로 이런 ‘접근의 어려움’이 벽화를 더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.

    – 생존이 걸린 동굴, 집단의 비밀 장소
    – 낮은 불빛 아래, 오직 눈과 횃불에 의존해 그림을 그린 공간
    – 그림이 오래 남을 수 있었던 천연의 석회벽과 안정된 기후

    이 모든 조건이 겹쳐져, 인류는 여기에서 단지 생존 이상의 ‘기억’과 ‘이야기’를 남겼습니다. 바로 그 장소성 덕분에, 이 벽화는 5만 년의 시간을 견디며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.

     

     

     여행 팁 — 만약 당신이 그곳을 방문한다면

    • 가는 길: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남부, 마카사르 공항( Sultan Hasanuddin International Airport )을 통해 입국 → 차량 또는 투어 예약으로 Maros‑Pangkep 지역 이동(공항에서 약 1~1.5시간)
    • 입장 & 접근: 동굴 입구는 논밭보다 높이 있고, 좁은 계단이나 철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경우가 많음. 경사진 바위와 미끄러운 돌길이 많아 트레킹화 추천.
    • 가이드 동행 필수: 대부분 동굴은 일반 관광 개방이 아닌 문화유산 보호 구역. 현지 가이드와 함께 방문해야 하며, 보존을 위해 동굴 내부 출입 통제나 제한이 있을 수 있음.
    • 기억해야 할 예의: 벽화에 손대지 않기, 플래시 사진 자제, 동굴 내부 조용히 하는 등. 5만 년 전의 예술을 후대에 남기는 것은 방문자의 책임.

     

    5만 년 전, 우리와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본 사람들

     

    Leang Karampuang과 주변 동굴들 — 이곳의 붉은 손바닥 자국, 멧돼지와 인물의 실루엣, 벽에 남은 흐릿한 흔적 하나하나가, 수만 년 전 인간이 품었던 상상과 삶, 그리고 공동체의 흔적입니다.

    우리가 손을 내밀고, 빛을 비추어 그 벽화를 들여다볼 때, 단순히 ‘과거의 유물’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. 수천, 수만 년 전에도 인간은 그림으로 말을 걸었고, 이야기를 남겼으며,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려 했습니다.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 이야기를 따라, 시간의 두꺼운 장막을 넘어 ‘인간다움의 시작’에 닿습니다.

     

     

     

     

     

    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 📚 참고자료 / Sources 1. Science.org — Dreamlike Pig-Hunting Scene: World’s Oldest Figurative Art (2024) 2. Griffith University Research Publication (2024) 3. Wiki: Leang Karampuang Cave Paintings (Updated 2025) … 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

     

     

     

     

    시간을 건너, 본질을 향해.

    — Timeless